사랑의 묘약
새해 첫날 일출을 보면서 소원을 빌고
정초가 되면 무속인을 찾아가 미래에 대한 궁금증으로
운세를 보지만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을 깨달아야 한다.
날아갈수록 삶이 고단하고 불확실하지만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헌법 10조에 '행복추구권'이 보장되어 있지만
탄핵정국으로 치닫는 이 나라에서 더 이상 기댈 것 없고
그렇다고 교회가 나서야 하는데
대부분 교회는 세속주의와 기복신앙에 빠져
황금만능교로 타락되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왔다.”(마태20,28)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그들을 대변하고 희망과 위로를 주셨는데
일부 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도깨비방망이라도 갖은 양
오직 기도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선량한 성도들을 기만하고 있다.
인간은 나약한 동물이기에 초월적인 존재한테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위안을 받고 싶어 하지만
교회도 사찰도 자기 편향에 빠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성경에는 사랑과 희망적인 복음으로 빼곡하지만
행함 없이 오직 입술로 바치는 기도만으로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녀 간의 진실한 사랑을 하면 표정이 밝아지고 기쁨이 충만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이 생기듯
종교도 마찬가지로 초월적인 존재를 통하여 희망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감이 생겨 험난한 세상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변화된 삶이'구원'이고 '부활'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무엇을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처럼 갖은것을 나누고 선행하다 보면
자신이 점차적으로 변화되어
자신의 삶이 '천국'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35~40참조)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13,35)
2017년 1월 6일
참 평화방문요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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