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약
특정종교·종파의 입장에서 신앙내용과 대상·근거 등을 논하고,
신앙생활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반성적·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신학이라는 말은 원어 자체가 오랜 역사적 과정에 유래하는
몇 가지 위상(位相)을 포함하고 있다.
★ 설명
특정종교·종파의 입장에서 신앙내용과 대상·근거 등을 논하고,
신앙생활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반성적·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 개념과 역사
신학이라는 말은 원어 자체가 오랜 역사적 과정에 유래하는 몇 가지
위상(位相)을 포함하고 있다.
어원인 그리스어 테올로기아(theologia)는 <신(神)에 대한 이야기>
를 가리키며 지금의<신화(神話)>에 가깝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 등의 신화문학자를
신학자라고 하고, 그가 자연학자라고 부르는 철학자들과 구별했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최고의 인식인 형이상학을
<신학(theologikē) 이라고 하였으나 전체적으로는 신학과 신화는
같다는 뜻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테올로기아라는 말은 다른 많은 개념과 함께 그리스도교에
흡수되어 차츰 정착되어 갔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이라고 말할 정도의
것이었으며, <성스러운 교설><신앙의 교설>이라고 표현하였다.
이에 반하여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스콜라철학
시대부터이다. 그것은 중세의 대학 성립과도 관련되어 있는데, 13세기
전반부터 파리 등의 대학에서<신학>또는 <신학부>라는 호칭이
쓰이게 되었다.
물론 그로 인하여<성스러운 교설>이 사어(死語)가 된 것은 아니지만,
이 무렵 이후 변증적 학문으로서의 신학의 개념이 성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적용범위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보아 <신학>이라고 하는 술어를 적용할
때에는 몇 가지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첫째는 그것이 교설(종교사상) 그 자체와, 그것에 관한 학문적 반성이라는
2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양자의 관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데, 어느 시대의 반성의
산물은 결국 반성되어야 될 대상인 교설 그 자체로 전화(轉化)한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에 신학개념의 소급적인 사용문제와 관계된다.
학문으로서의 신학은 비교적 새로운 것으로서 중세 이후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은 가끔 거슬러 올라가서 쓰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바울신학><예언자의 신학>등이다.
이들은<바울의 종교사상><예언자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둘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신학의 확대적용이다.
신학은 유럽적 그리스도교의 지반(地盤)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전개된 것이지만,
특히 최근에 다른 종교에도 유비적(類比的)으로 쓰이는 일이 많아졌다.
이를테면<이슬람신학><신도신학(神道神學)>등으로 표현되며,
때로는<미개인의 신학>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다만 신의 관념을 중핵(中核)으로 하지 않는 불교 등에 대해서는
<신학>은 부적절하기 때문에<교학(敎學)>또는<종학(宗學)>
이라고 하는 것이 통례이다.
○ 학문적 성격
확대 적용된 의미에서의 신학의 성격으로 몇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로 그 대상에서 보면, 신학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특정종교를
기반으로 하고 또한 자료로 하여 이루어진다.
다른 종교에 대하여 논급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 특정종교와 관련되어
있을 때에 한한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복수의 종교, 또는 종교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학이나 종교철학과는 다른 점이다.
둘째로 이러한 사실은 그 방법, 즉 인식태도나 목표와도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신학은 어떤 종교에 대한 주체적인 결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객관적·
기술적(記述的) 학문이 아니다.
신학은 신앙이 지녀야 될 모습을 추구하는<규범적>인 것이라든가,
전통적인 권위에 의존한다고 하는 것 등은 이것을 지적한 것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적 전제에 관한 것이지, 실제의 논의
과정에서 통상적이고도 합리적인 기준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셋째로 위의 사실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신화는 어떤 전통 또는
세계관적 공동체(그리스도교의 용어로 말하면 교회)를 배경으로 해서
수행되는 것이다.
이 작업의 담당자인 신학자는 그 범위나 구성이 어떠하든,
항상 그 공동체 안에서 또는 공동체를 향하여 신앙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그러나 공동체가 놓인 사회적·문화적 상황은 결코
고정된 것은 아니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다.
신학이 부단히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자체를 형성해 가는
역사성은 여기서 있다.
※ 이슬람신학 (-神學)
★ 요약
이슬람교의 교리나 신앙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
아라비아어로 칼람(Kalām)이라고 한다.
◎ 설명
이슬람교의 교리나 신앙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 아라비아어로
칼람(Kalām)이라고 한다.
칼람이란, 원래 말·의논·사변(思辨)·논증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신에 대한 논증학인 신학에 사용하게 되었다고도 하고,
또는 신학에서 최초로 격렬하게 논의된 주제가 신의 말씀인
코란의 피조성(被造性) 문제였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한 신의 속성·본질을 둘러싼<신의 유일성>문제가 주요한 주제였기
때문에 이슬람신학은 <신의 유일성의 학문('Ilm al-Tawhīd)>
이라고도 한다.
즉 칼람이란, 논증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사변신학(思辨神學)을 말한다.
원래 이슬람교의 실천적 성격과 그 교의의 쉽고 명석함으로 인하여
코란이나 하디스(예언자의 언행으로서 전해지는 전승)의 글자 그대로의
해석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학자나 민중들 사이에서는 신학적인 사변이나
논증은 소용이 없고, 설령 정통적 신조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원래 없었던<신기(新奇)한 것>,즉 비도아[異端(이단)]라고 하여
반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것은 칼람이 이성의 학문이고, 그 입장에서 갖가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계시의 내용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계시를
이성에 종속시킬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람의 내용은 교의(敎義)의 설명이라기보다는 이단·이설이나
이교(異敎)에 대한 호교학(護敎學)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 칼람 발생의 기반
엄밀한 의미에서의 칼람은 무타질라파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 파는 보통 8세기 전반의 와시르 이븐 아타와 아무르 이븐 우바이드를
시조로 하고 있으나, 진정한 사변신학으로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약 1세기 뒤였다.
특히 9세기 초 아바스왕조 칼리프 마문은 이 파를 정부가 공인하는
신학으로서 강제했으나, 결국에는 실패하고 이 파는 이단이 되었다.
칼람 발생의 배경으로는 4가지 문제를 들 수 있다.
첫째로, 카와리지파(Khāwariji 派)가 과격한 반체제운동을 통하여 제기한
신앙과 죄, 구원과 행위의 관계, 이와 관련한 현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시비라고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카와리지파는<신앙=행위>로 보아, 대죄(大罪)로 인하여 신앙은
소멸한다고 보는 입장에서<부정(不正)한>현체제를 부인하였다.
이에 반하여 무르지아파(Murji'a 派)는 대죄자(大罪者)에 대한 판단은
신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그때까지는 대죄자도 신앙인으로서
받아들여야 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리하여 일단 신앙과 행위를 분리시켜 현체제를 옹호하게 되었다.
둘째로, 이것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 인간의<자유의지>와
<예정(인간의 행위는 신의 의지로서 미리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것)>
문제이다.
코란에는 이 양쪽의 주장이 병존하고 있는데, 아랍의 전통적인 운명관과
이슬람교에서 강조하고 있는 신의 힘의 절대성이 결합하여 초기 무슬림
(이슬람교도) 사이에서 두드러진 예정설적(豫定設的) 경향을 낳았다.
이러한 경향을 극단적인 형태로 대표하는 것이 자브리파이다.
이 파의 견해가 현실 체제를 불가피한 것으로 감수하도록 작용한
것과는 달리 공동체의 현상을 비판하는 카다리파(Cathari 派)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윤리적 책임 및 신의 정의를 강조하였다.
셋째는 경전해석의 문제로, 코란이나 하디스에는 신에 대한
의인적(擬人的)감각적 표현이 많다.
이것을 신의 유일성에 어울리도록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하슈비파는 경전의 표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신을 인간과
똑같이 이해하였다.
이에 반하여 자후미파는 그러한 표현을 비유로 해석하였다.
넷째로, 이교도 특히 그리스도교도나 마니교도와의 논쟁이 있는데,
그리스어 문헌 번역에서 영향을 받았다.
○ 무타질라파의 확립
이상과 같은 접촉이나 영향을 통해서 얻은 새로운 개념에 따라 공동체
안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를 일관된 체계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칼람이고, 그 최초의 대표가 무타질라파이다.
한발리파로 대표되는 전통주의적 보수파가 이성과 계시의<모순>에
대해서는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고<양태(樣態)가 어떠하든지를 불문하고>
계시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과는 달리 무타질라파는 이것을 이성을 통해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무타질라파는 신의 유일성 문제에 대해서는 자후미파의 흐름을
계승하면서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신의 본질에 관해서는 일체의
다성(多性)을 부정하는 절대적 유일성의 입장에서 신의 속성을 부정하고,
그것을 본질로 환원했다.
신의 정의에 관해서는 카다리파의 흐름을 계승하여 이성의 입장에서
인간의 부정·죄·악은 신과는 관계가 없고 인간 자신의 행위라고 보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많은 전통적 신조를 부정하는 분파가 되었다.
○아슈아리파의 칼람
무타질라파의 너무도 합리주의적 입장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 똑같은
사변(思辨)을 사용하면서도 전통적 신조를 변호한
아슈아리(al-Ash'ari)와 그 일파이다.
아슈아리파는 먼저 신의 유일성 문제에 관해서 신의 본질이란
<똑같지는 않지만, 별개의 것도 아닌>것으로 여기고,
본질에 영원히 내재하는 속성을 인정하여, 신의 인격성과 초월성을
조화시키려고 한다.
신의 정의에 대해서는 무타질라파가 이성에 의한 선악의 일반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는 데 반하여,
아슈아리파는 선악의 판단은 계시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또한 신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예정설의 입장에서 이것을 인간의 윤리적
책임과 조화시키려고 인간은 신이 창조한 행위를 획득한다고
보는 <획득설>을 주장한다.
아슈아리파와 거의 같은 입장이면서도 이성을 다소
중요시하는 것이 마투리디파이다.
이 양자가 후에 정통신학으로서 확립되었다.
원래 칼람은<철학(파르사파)>과는 별개의 것이지만,
11세기 말 아슈아리파의 가잘리가 철학을 비판, 흡수한 이후,
서서히 그 사변(思辨)의 정도는 깊어져서 점점 철학에 접근하게 되었다.
♥참고 문헌♥
제랄드 오콜린스, 김광식 역, 기초신학(분도출판사)
제랄드 오콜린스, 김광식 역, 계시란 무엇인가?(가톨릭출판사)
교리신학원 통신신학교육부 엮음, 기초신학(교리신학원)
박진량,그리스도교 계시론(분도출판사)
정하권,신학(한국가톨릭대사전8)
박순신,기초신학(한국가톨릭대사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