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금해요

묵주(黙珠) 기도

참평화방문요양센터 2008. 5. 25. 23:44

 묵주(黙珠) 기도 
I. 묵주기도의 역사
묵주기도는 마리아께 드리는 인사와 더불어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는 
전통으로부터 발전된 기도이다. 
수도자들은 날마다 마리아께 50번 또는 150번의 성모송을 받쳤다. 
그 당시에는 다만 마리아의 이름과 엘리사벳의 인사말이 이 기도의 전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인사말에 묵상과 다른 기도문들이 덧붙여지게 되었다. 
 * 묵주기도의 이름과 개념
   이름: “로사리오”라는 이름은 12c-13c에 마리아 연가와 마리아를 주제로 한 
시에서 비롯되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장미는 성모님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꽃이었다. 
로사리오는 장미 꽃다발을 의미하며, 이것이 50번 또는 150번의 성모송을 상징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의 언어 습관에서 유래되었다. 
여기 로사리오와 관련하여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성모님을 공경하기 위해서 자주 싱싱한 장미로 꽃다발을 엮어서 
마리아께 봉헌하였다. 그 청년은 성모님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런데 모든 것이 엄격한 규율아래 움직이므로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자기의 오랜 습관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청년은 매우 우울해졌는데, 하루는 수도생활을 오래한 연로하신 수사님께서 
그 까닭을 물었다. 
젊은 수련자의 설명을 듣고 그 경험 많은 수사님은 그 수련자에게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진짜 장미로 꽃다발을 엮어서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간편하면서도 
더 많은 장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수련자는 날마다 150번의 성모송을 봉헌함으로써 영적인 장미 꽃다발을 
성모님께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 
묵주기도를 상징하는 장미 꽃다발 즉, 로사리오라는 이름은 이리하여 13c부터 50번 
또는 150번의 성모송을 상징하는 말로 자리를 굳혔다.
  개념 : 묵주기도에 대하여 한마디로 간단히 말하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그 만큼 묵주기도는 내포하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가톨릭 신자들이 드리는 묵주기도는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다양하게 발전되어 온 결과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다양한 영성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가 전수받은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묵주기도 안에 있는 다양한 요소들은 그들 각자 다양한 성장 과정과 유래를 가지고 있다. 
묵주기도는 정확한 기도 방법을 가지고 있다. 
즉, 10번씩 반복되는 15번의 성모송과 그 사이마다 주의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그때 예수님의 일생에 대한 신비들을 묵상하며 기도한다. 
  묵주기도는 근본적으로 반복하는 기도에 속한다. 
그리고 동시에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이끄신 구원역사에 대한 묵상기도이다. 
15번의 신비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가 전개되며 그 때마다 10번의 성모송을 바친다.  
2. 발전과정에서 본 묵주기도의 전초단계
   a) 150편의 시편을 대신한 주의 기도(50번씩 3번 바침)
 50번 또는 150번이라는 숫자는 150편의 시편에서 유래한다. 
‘50번씩 3번 드리는 기도’라는 이름은 아일랜드에서 수도자들이 150편의 시편을 
일컬어 부른데서 유래한다. 
교회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우리는 아일랜드 수도자들에게서 많은 것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고백성사 후에 보속으로 이 기도를 바치게 하였다. 
그리고 죽은 이들의 영혼의 평화를 위해서도 이 기도를 드렸다. 
아일랜드의 “Kemble"이라는 수도원의 문서고에는 이런 사실들이 기록된 자료들이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 이런 관습들은 Kolumban 수도자들을 통하여 유럽 대륙에 전해지게 되었다. 
  150편의 시편을 기도하는 관습으로부터 150번의 주의 기도를 시편 대신에 바치는 
기도 형태가 발전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문맹인이 많아서 라틴어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므로 시편으로 
기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의 기도는 외워서 할 수 있었으므로 150편의 시편 대신에 
주의 기도 150번을 바치게 했던 것이다. 
또한 이로부터 150번의 성모송을 바치는 기도 형태가 나왔는데 
이것 역시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당시 아일랜드에는 세 가지 기도 형태가 있었다다. 
즉 입으로 하는 구술기도(염경기도), 몸으로 하는 몸짓기도
(예, 성 빠트리시오는 새벽마다 냇가에 발을 담그고 서서 두 팔을 위로 치켜 올린 자세로 
기도하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숙고하면서 하는 묵상기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기도의 형태는 동방에서도 아주 오래된 기도 방식들이었다.
  아일랜드의 수도자들은 결정적으로 이런 기도 방식들 안에서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짜 맞추어 묵주기도의 기본적인 형태를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 목적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이 고백성사 후 보속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성모송은 주의 기도와 더불어 일반 백성들이 
즐겨하는 기도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b) 성모송의 발전과정                  
  150번의 주의 기도에서 비롯된 기도는 세월이 흐르면서 150번의 성모송을 바치는 
기도 형태를 형성시켰다. 성모송은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묵주기도의 한 부분인 이 성모송은 묵주기도 전체가 그런 것처럼 
그리스도교 백성들의 언어에서 전례기도를 모방하면서 만들어졌다.
 LK 1,28의 천사의 인사말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LK 1,42의 엘리사벳의 인사말과 (당신은 모든 여인 중에서 가장 복되십니다.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합류하게 되었다. 마리아에게 하는 이 두 인사말은 
이미 6세기경 성탄 전 대림주일의 봉헌문에 조화를 이룬 하나의 기도문으로 나타난다. 
그 당시에는 대림주일 중 어느 한 주일을 마리아의 주일로 지냈다. 
  다미아노 성인(+1072) 은 그 당시에 실시되던 ‘마리아의 토요일’에 대하여 전해준다. 
12세기까지는 주의 기도와 신앙고백만이 신자들이 외워야 할 의무 조항이었다. 
그러나 12세기 말경에는 이미 성모송도 이들 항목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장 빠른 기록은 1198년 파리교구 문서에서 발견된다. 
그 다음 13세기 초에, 이와 유사한 현상이 독일의 라인 강변 서부에서 일어났는데, 
이때에 이미 성모송의 기존 문장에 ‘예수’라는 단어가 첨가되었다. 
그리하여 기도문은 “태중에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십니다.”라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교회는 13세기부터 성모송을 주일 강론 때 
주의 기도나 신앙고백에 관한 것을 가‘아멘’이 추가되었다. 
  성모송의 두 번째 부분인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는 비교적 훗날에 추가되었다. 
전례기도의 모방으로부터 시작하여 첫 번째 부분이 발전한 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다. 그 다음 부분인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라는 부분도 역시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때까지는 교회의 시간경 기도서가 찬미나 감사 그리고 청원 등, 
모든 기도를 하느님과 예수님께만 드리게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13세기부터 하느님과 주님께만 드렸던 기도를 성모 마리아께도 드리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성탄시기와 부활시기의 찬미가 끝에는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라는 구절이 추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 하루에 5번씩 드리던 ‘소시간경’에도 
마리아를 공경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들어 있었다. 
즉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여! 자비의 어머니, 우리를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우리가 죽을 때 우리를 위해 빌어 주소서.” 이 기도문은 동시에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짧고 다른 하나는 긴 형태이다. 
1567년 Augsburg 시노드 기록문에는 이 짧은 형태의 기도문이 기록되어 있다.
“성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여, 우리 가련한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 좀 더 긴 문장의 형태는, “성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여, 지금 그리고 
우리 죽는 시간에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이러한 기도문은 그 당시의 분위기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중세 때는 십자군 전쟁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전쟁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었고, 신자들의 불안한 마음은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위로를 받았다. 
(*** 십자군 전쟁은 200여년 정도 지속되었다. 1095년 교황 울바노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결성을 역설하였고, 
그 후 베르나르도 성인은 십자군에 자원할 것을 여러 곳에서 강론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프랑스의 루이 왕을 들 수 있다. 
루이 왕은 1270년 8차 원정 때 전사한다. 그 후 1291. 5. 28 십자군이 최종 철수하면서 
2세기에 걸친 종교전쟁은 막을 내렸다.)        
   c) 영광송의 첨가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라는 구절은 유대인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하느님께 영광!’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한다. 
바실리오 성인의 증언에 따르면 이 영광송은 아주 오랜 옛 날부터 사용되었다. 
이미 3-4세기에 시편을 끝맺을 때는 영광송으로 마무리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영광송의 모습은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사용되었으며,
 이미 529년 Vaison 시노드를 통하여 확정되었다.
  삼위일체께 대한 이 영광송은 아주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영광송은 역사적으로 봐서 매우 이른 시기에 형성 되었지만 성모송과의 합류는 
가장 늦게 되었기 때문이다. 
묵주기도 안에서 이 영광송은 기도의 치솟는 율동성을 조성한다. 
즉 마리아로부터 예수님께로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거룩하신 삼위일체께로 향하게 한다. 
이 영광송은 참으로 특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일찍 공식적으로 인정된 기도문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따라서 19세기 까지도 묵주기도에 합류하지 못한 곳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16세기 덴마크의 어느 미망인의 기도서에는 이 영광송이 들어있다. 
그리고 같은 시대 Ludwig Blosisus의 묵주기도 책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1823년 이태리에서 발간된 한 묵주기도 책에는 이 영광송이 빠져있다. 
이렇듯 영광송은 다양한 모습으로 묵주기도에 들어오게 되었다.
3. 묵주기도의 초기 형태
   오늘날 묵주기도의 초기 형태는 성모송과 주의 기도를 함께 연결하여 반복하던 
기도의 연습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반복 기도는 
동방의 수도자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 당시 수도자들은 끊임없는 기도 속에서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결합을 추구했다. 
  그 당시에는 시편기도와 예수님의 생애와 고통을 주제로 번갈아 가면서 반복하여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때 반복되는 기도와 변화되는 주제의 결합은 
훗날 묵주기도의 형태에는 영향을 주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묵주기도는 근본적으로 마리아 심신 차원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는 기도이다. 
그의 기본 형태는 예수님의 삶을 주제로 하는 묵상과 함께 성모송을 노래함으로써 
마리아와 예수님께 대한 신앙심이 조화를 이루며 결합되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는 처음으로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체계화 하였다. 
그리고 마리아 심신에 역점을 둔 15번의 신비와 성모송이 처음으로 조직적인 
결합을 이루게 된 것은 1252년 시토회의 수도원장 Stephan v. Sallay가 쓴
 ‘환희의 신비 묵상’에서였다. 묵주기도의 초기 단계로써 1300년경에 쓰여진
 ‘예수님 생애 묵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독일 Trier 근처의 St. Thomas 시토 수녀회에서 
쓰여진 것인데, 그 당시 수녀들은 날마다 100번의 성모송과 짧게 작성된 100개의 
그리스도의 신비를 결합하여 기도하였다.
  그 당시 그리스도 찬미와 마리아 찬미는 확고히 결합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때에 둘 사이에 모종의 경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어머니의 특성(거룩한 모성)이 마리아에게 주어지는 다른 모든 표현들이나 
역할들을 포함하는 중심 테마였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도 성인의 말씀에 의하면 마리아를 통하여 전해지는 찬미는 아들의 영광을 더해주고, 
아들에게 향하는 영광은 또한 어머니의 영광을 더해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론적인 마리아 신심이 강했던 초기 시토회의 영성은 훗날 묵주기도의 
발전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4. 오늘날 묵주기도의 직접적인 역사
  그러나 오늘날 현존하는 묵주기도의 출발점은 시토회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고, 
카르투시안(Kartaeuser) 사제였던 도미니꼬가 쓴 ‘예수의 생애’로부터 유래된다. 
직접적인 역사의 출발점은 독일의 Trier 근교에 있는 St. Alban 이라는 
카르투시안 수도원이다. 
1400년경 이곳에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주제로 한 묵주기도가 행하여 졌으며 
이곳으로부터 이것은 널리 전파되었다. 이것을 주도한 사람은 카루투시안 사제였던 
에센의 아돌프(Adolf v. Essen, + 1439)와 프로이센의 도미니꼬(+1460)였다.
 Adolf는 그 당시 수도원장이었고 그의 지도를 받던 수련자 도미니꼬가 
이런 형태를 착안한 것이다. 이것은 대략 1410년경으로 추정된다. 
   a) 프로이센의 도미니꼬(Dominikus v. Proussen, 1384-1460)
   그는 1384년 당시 독일 땅이었던(지금은 폴란드) Danzig이라는 어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크라카우(Krakau: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구장으로 계셨던 교구)에서 공부했으며 
특히 라틴어 등 인문학을 즐겨 배웠다. 그는 매우 자유분방한 청년이었으나, 
가슴 한구석에는 늘 거룩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번은 프라하(Prag)에 있는 
카르투시오 수도회에 입회하길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는 오묘하여 그는 드디어 Trier에 있는 
카르투시오 수도회에 입회할 수 있었다. 
  이 카르투시오 수도회는 대단히 엄격한 수도회로써 사제 브루노(1035-1101, 축일 10. 6)가 
창설한 은수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수도회이다. 
그가 입회할 무렵 가장 젊은 나이로 수도원장이 된 Adolf는 새 수련자 도미니꼬를 
그의 자유분방한 삶으로부터 전향시키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그 자신도 전력을 다하였다. 
수도원장은 이 젊은이를 돕는 방법 중 하나로 당시 실시되던 성모송 50번을 권했다. 
그때 도미니꼬는 수도원장의 가르침을 뛰어 넘어 처음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그린 
각각의 묵상 구절을 묵주기도에 결합시켰다. 훗날 도미니꼬 자신이 말하길, 
그는 처음으로 그런 묵상 구절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묵주기도에 
처음으로 결합시켰다고 말한다. 그는 수도생활 초기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진정한 카르투시안으로 살다가 1460년에 트리어에서 세상을 떠났다.
   b) 프로이센의 도미니꼬로부터 유래된 묵주기도
     도미니꼬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날마다 묵상하며 숙고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강론하고 전파하는데 힘썼다. 그것을 또한 묵주기도와 결합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각각의 묵상 구절들은 철저히 성서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는 융통성 없는 성서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와는 달리 각자의 영적인 취향에 맞게 
자유로이 묵상구절을 만들어 사용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것은 묵상과 기도의 전통 안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예수님의 삶을 그린 기도이다. 
묵주기도의 묵상 내용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4개의 복음서와 교부들의 저서로부터 이끌어 
냈으며, 또한 경건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통하여 교육 및 신앙심을 고취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이런 기도 방식을 취한 것은, 종교적인 느낌 안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감상적인 동정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또한 소외된 마리아 신심을 드러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기도 방식을 취한 이유는,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서 당신 아드님을 통해 행하신 구원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미사성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구원역사를 기억하는 것처럼 
묵주기도에서도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기억하는 행위는 구약에서도 
그렇고 총체적인 그리스도교 전례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때 기도의 중심 요소로서 
기억하는 행위는 신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통에도 일치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모범 안에서 우리 생활의 개선을 위해서도 아주 유익한 기도가 되었다.
  도미니꼬는 150개의 묵상 테마를 작성했는데, 그 중 50개는 예수님의 강생과 어린 시절, 
다른 50개는 공생활에 관하여 그리고 나머지 50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주님의 부활을 묘사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150개의 묵상 주제는 대단한 호응과 함께 
널리 전파되었으며 사랑받는 기도가 되었다.
5. 묵주기도의 전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묵주기도에서는 원래 도미니꼬가 만들었던 많은 조항들이 
대폭 축소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환희의 신비 5개, 고통의 신비 5개 그리고 
영광의 신비 5개, 이리하여 총 15개의 묵상조항이 있을 뿐이다. 
(*** 2002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빛의 신비’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독일어권에서는 ‘위로의 신비’가 있다. 이 위로의 신비는 
현재 독일 기도서에 공식 수록되었고 개인이나 공동체 차원에서 바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 많던 신비 조항들이 대폭 줄어들고 간단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도미니꼬 수도회 소속 알라누스(Alanus de Rupe, +1475) 형제가
 ‘묵주기도 형제회’(1495.7. 3, 교황 알렉산더 6세 인준)를 결성하여 
그리스도교 백성의 모든 계층에 묵주기도를 전파하고자 애썼다. 
그들은 모든 백성들이 묵주기도의 신비를 바치게 하기 위해서 간단히 외워서 
기도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 때 보다 쉽게 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150개의 조항들은 15개로 대폭 축소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 기도가 공동체 안에서 바쳐지기 위해서는 어디서나 
같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합송하기 쉬워야 했다. 
이런 역사 때문에 도미니꼬 수도회 창설자인 도미니꼬(+1221) 성인이 
묵주기도의 창시자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이리하여 묵상 조항의 다양성과 자유로움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원래 프로이센의 도미니꼬는 각자의 취향과 능력에 맞게 묵주기도의 묵상 조항을 
성서로부터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성과 개방성을 강조했었다.
II. 묵주기도의 신학적인 고찰
   묵주기도는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며 
또한 이러한 구원역사 안에서 마리아의 위치를 보여 준다. 
묵주기도를  반복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기도의 분위기가 형성되며, 
신자들은 어느 덧 신앙의 빛으로 고양된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는 공동체뿐만 아니라 
개인 기도를 위해서도 중요한 기도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1. 서방의 묵주기도와 동방의 예수기도 사이에 있는 유사성  
   예수님 생애를 주제로 한 묵상 조항들은 서방교회에서 행하는 묵주기도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실은 이보다 훨씬 먼저 동방의 ‘예수의 기도’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동방교회의 예수기도에서는 묵주기도에서처럼 그렇게 세부 조항으로 
나누지 않고 기도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서방의 여러 가지 전례와 기도들은 사실은 동방의 
‘예수의 기도’로부터 전수되어 체계화되고 풍성하게 발전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반면에 동방의 ‘예수의 기도’는 처음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 두 기도 사이의 유사성은 그들 각자의 영역에서 기도의 형식이 가장 대중적이라든가 
또는 일반 신자들이 가장 많이 바치는 활성화된 기도라는데 있기도 하지만, 
이들 두 기도의 뿌리가 같은 영적인 환경에서 나왔다는데 있다. 
  a) 반복기도
     반복은 모든 명상의 특징이다. 하느님께 대한 동경과 기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일치는 동방 수도자들로 하여금 사막의 적막 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사막에서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된 영적인 삶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수도자 개개인의 고유한 실행을 통하여 완전히 독창적인 사상의 세계를 이루었다. 
이리하여 기도는 내적인 행위와 같이 되었다. 즉 기도는 어떤 사람이 기도를 하든,
 일을 하든 아니면 휴식을 취하든 아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완전히 내적인 상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수도자들은 그들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드러나지 않는 
내적인 명상기도를 조심스럽게 연습했던 것이다. 
그들은 성서나 시편의 어느 한 구절을 지속적으로 말하거나 속삭이거나 혹은 부르짓거나 
하면서 묵상하였다(오늘날 말하는 소위, 렉시오 디비나의 전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 짧은 구절과 내용이 그들 자신의 것이 되게 하였다. 
그들이 외우는 성서 구절이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형성케 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수행이 그들을 죄로부터 지켜주고 좋지 않은 생각으로부터 보호해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많은 수도자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영적 수련에서 완전히 개인적인, 
마치 감추어진 비밀스런 관상처럼 이런 구절들을 외우면서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처음부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 많은 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단지 예수님의 이름만을 부른 것이 아니다. 사실은 다양한 부르짖음과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메시아성이나 성자께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존경의 칭호들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또는 ‘키리에 엘레이손’ 등이 있었다.
  여기서 성모송도 ‘예수의 기도’와 비슷한 맥락에서 말 할 수 있다.
 서방에서의 성모송도 동방의 이러한 감추어진 명상과 비슷한 영적인 동기에서, 
즉 성서나 시편에서 골라낸 짧은 구절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낭송한 동방의 것과 
비슷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성모송은 서방 수도자들의 개인적인 기도 이래로 
반복을 위주로 하는 기도였다. 이때 반복되는 성모송의 숫자는 아일랜드에서 보편화 되었던
 ‘50편의 시편을 3번 바치는 기도’를 기준으로 해서 성모송도 50번 
또는 50번씩 3번을 연속으로 바쳤다. 
  이러한 동방 기도의 모티브는 초기 서방 수도자들을 통하여 서방의 영성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 일환으로 서방의 수도자 Kassian을 통하여 동방의 수도생활이
 서방에 알려지게 되었다. 서방 수도자들 역시 지속적인 기도와 올바른 기도 형태를 
추구했던 것이다. 특히 라틴어를 읽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하여 이러한 반복 기도는 
아주 중요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간단한 구절을 암기하고 외워서 시편기도를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주의 기도나 사도신경 그리고 성모송을 
암기하여 기도하였다. 이렇게 되풀이하는 묵주기도나 동방의 예수의 기도는 그 당시 대부분을 
이루고 있던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영적인 양식을 대어주는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b) 그리스도론 중심의 묵상기도
     동방의 ‘예수의 기도’가 예수의 이름을 일컫지 않고도 예수님께로 향한 기도였던 것처럼,
 성모송 역시 성모송에 ‘예수’의 이름이 삽입되기 전에도 이미 나름대로 예수의 기도였다. 
이러한 성모송은 메시아의 고백을 중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우리가 앞서 본바와 같이 
성모송은 13세기에 완성되었다. 즉 그 이전에는 성모송이 ‘태중에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로 
끝났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태중에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십니다.’라는 문장은 
중세 때 독일의 라인강 서부 지역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완성된 형태인데 
여기서는 신학과 영성 차원에서 진지한 숙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한 과정이 동방의 ‘예수의 기도’에도 있었으며 그 과정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고정된 ‘예수의 기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기도에 있어서 예수의 이름을 중심사상으로 이해하기에 이르렀으며, 
몇 몇 학자들이 잘못 알고 주장하는 것처럼 이 기도의 형태가 마치 처음부터 단지 
예수의 이름만을 반복하여 부르는 기도였던 것처럼 잘못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론적인 반복기도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명상의 수행을 통하여 탄생된 것들이며 
이로부터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성서에 바탕을 둔 짧은 기도문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동방의 예수의 기도가 하나의 고정된 기도문으로 고착된 반면에 서방의 묵주기도는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묵주기도에 있어서 묵상을 위한 조항의 선택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애였다. 그리고 이러한 각 조항들은 발음하기에 좋고 
외우기도 좋게 문법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 
2. 묵주기도의 영성
   a) 신학적인 견해
   교황 바오로 6세는 1975년, 교황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에서 마리아를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이 때 묵주기도의 신학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하였다.
  ❶ 묵주기도는 성서를 바탕으로 한 기도이다. 묵주기도의 성서적인 성격은 뚜렷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기도의 형식과 신비의 내용이 성서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각 신비의 내용상의 질서는 성서를 따르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마치 필립 2, 6-11에 나오는
 ‘그리스도 찬미가’와도 같이 최초로 선포된 믿음에 대한 숙고의 관점에도 일치하고 있다. 
이것은 로사리오의 묵상기도를 하나의 중요한 신앙고백 형태로 만든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❷ 묵주기도는 구원역사 안에서 드리는 기도이다. 묵주기도는 그리스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사건들을 보여준다. 동정녀께 잉태되어 나시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어린 시절, 
가장 중요한 부활의 신비(구원을 가져온 수난과 영광스런 부활) 그리고 그로 인한 계속적인 
영향력, 예를 들어서 가장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이 지상의 삶을 마치신 후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 고향으로 들어 올려짐을 보여준다. 묵주기도의 3가지 신비는 단지 
역사의 진행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고 가장 기본이 되는 신앙고백을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신비를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❸ 묵주기도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기도이다. 그리스도의 인간되심과 인간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성서에 바탕을 둔 이 기도는 철저히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다. 
이것은 단지 묵상의 관점 때문만이 아니라 성모송 자체가 하나의 그리스도 찬미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LK 1,42에 나와 있는 바와 같다. 즉 “태중의 아드님은 복되십니다.”라고 노래한다.
    ❹ 묵주기도는 묵상의 성격을 띤 기도이다. 바오로 6세는 말씀하시길, 
만일 묵주기도에 묵상의 요소가 빠져 있다면 이 기도는 영혼이 없는 시체와 같을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의미 없는 반복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님께서 경고하신 것에 완전히 위배된다. 
주님께서는 Mt 6,7에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 주시는 줄 안다.” 고 하셨다. 묵주기도는 
이 기도의 본성상 하나의 조용한 리듬을 요구하며 동시에 명상 속에 머물길 요구한다. 
이 ‘머물음’은 기도자로 하여금 주님의 신비를 묵상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한다. 
     ❺ 묵주기도는 전례와 연관성이 있는 기도이다. 전례와 묵주기도는 서로 상반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동일시되지도 않는다. 모든 기도의 형태는 그들 각자의 고유성을 지켜줄 때 
더욱 풍요로워 질 수 있다. 여기서 전례의 우위성을 어렵지 않게 나타낼 수 있는데, 
왜냐하면 묵주기도 역시 전례의 정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또한 묵주기도에도 공동체적인 
성격이 있는데 그것은 성서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음은 물론이요, 완전히 그리스도의 신비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전례는 구원의 신비를 거룩한 표징의 베일 아래 출현시키고 
현실화 시킨다. 이에 반하여 묵주기도는 반복되는 경건한 음미를 통하여 구원역사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동시에 더 나아가 일상을 위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묵주기도를 정의하면서, 무엇보다도 묵상의 특징을 잘 살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마리아 신심의 지평선은 묵상 안에서 반복되는 묵주기도의 3가지 신비를 
통하여 열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신비는 이러한 마리아 신심 차원의 
지평선위에서 묵상될 수 있다.     
  b) 종교와 사목 차원에서의 의미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는 묵주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묵주기도는 마리아의 생애 안에 머무는 것인데, 그 생애의 내용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묵주기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의 눈으로, 마리아와 함께 강생의 신비와 주님의 수난과 현양을 
묵상하도록 이끌어 준다. 묵주기도 안에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인간 예수님을 묵상하지만,
 ‘십자가의 길’에서처럼 직접적으로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리아를 통해서 
즉, 마리의 삶의 내용으로서 예수님을 마리아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가슴에 간직하는 것이다. 
묵주기도는 십자가의 길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길은 14처라는 목적지가 있지만 
묵주기도는 목적지가 없고 머물러 명상하는 하나의 공간과 심오한 깊이가 있을 뿐이다. 
  ‘묵주기도는 하나의 체류 즉, 머물음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 외적인 시간뿐 아니라 내적인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 묵주기도를 
제대로 하길 원한다면, 그를 재촉하는 내적 외적인 모든 요소들을 잠시 물리치고 침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조건 많은 양의 묵주기도를 바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단을 바쳐도 제대로 정성껏 바쳐야 한다. H. Schuermann은 말하길 마리아론적인 
묵주기도의 공간은 곧 교회론적인 기도의 공간이라고 한다. 묵주기도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주님의 생애를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회고하는 기도이다. 
  묵주기도는 외적으로 많은 양의 기도를 바쳐야 하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널리 행하고 있는 이 기도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Romano Guardini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모든 것들은 ‘반복’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이 반복은 삶의 한 요소이다. 심장의 고동은 하나의 반복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늘 변함없이 심장으로 향하는 피의 움직임, 곧 ‘들어옴’과 ‘나감’인 것이다. 
우리의 호흡 또한 반복 외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늘 같은 공기의 들어옴과 나옴인 것이다. 
이러한 리듬의 반복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반복은 그 고유한 가치를 손상시키기는커녕 
계속해서 그 가치를 보존시켜 준다. 이처럼 묵주기도의 반복은 이 기도가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내적인 재촉에서 비롯되는 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묵주기도는 성서적인 특징이라든가 그리스도론적인 내용, 그리고 공동체 기도로서의 
성향 때문에 확실히 전례와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미사 중에 묵주기도를 드리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공동체가 함께 바치는 묵주기도는 완전한 대사를 얻는다. 개인으로 바치는 
기도는 부분적인 대사를 얻는다. 이때 전제조건은 입술로 외는 기도에 
내적인 묵상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묵주기도’에 대하여 발표했는데, 
거기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묵주기도는 신자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제공해 주어야 하고 
삶의 중요한 기본 요소들을 강화시켜 주어야 하며 그들의 기도와 사고에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완전하고 기쁜 그리스도인다운 경건함 속에서 
모든 이와 모든 민족을 위해 온 세상을 위한 기도로써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잘 묵상한 묵주기도는 다음의 3가지 요소를 동반한다.
  ❶ 신비의 묵상: 각 신비의 밝고 선명한 그리고 재빠른 묵상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신앙의 진리와 예수님의 구세주로서의 과제를 선포하는 것이다. 
  ❷ 내적인 숙고: 이것은 기도자의 정신을 생생한 빛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의 충만함으로 
넘치게 하는 것이다. 개개의 신비 묵상 안에서 각자는 자신에게 맞아 떨어지는 좋은 가르침 즉, 
각 개인의 구원과 자기 삶의 환경에 맞는 그러한 가르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❸ 경건한 의도: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섭리에,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모든 곤궁에 능동적인 이웃사랑의 실천을 증거하는 것이다. 생생하게 자기를 들어낼 수 있는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사랑은, 우리 모두가 신비체인 그리스도의 몸에 다함께 속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시는 마리아에 대한 신뢰는, 교회의 체험 안에서 볼 때 
아주 예외적인 도움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확신을 
기도의 실행을 통하여 관철해 왔다. 
  마리아의 전구는 많은 성인 성녀들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젤뚜르다(Hl. Gertrud, +1302) 성녀는 이렇게 전한다. 
주님께서 손수 성녀에게 나타나시어 성모님을 성녀의 보호자로 세우셔서 성녀의 일생 동안 
어머니의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며 동반해 주시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서는 아기를 성모님의 보호하심에 의탁하고 봉헌하였다. 
예를 들어서 프란치스꼬 살레시오 성인과 돈 보스꼬 성인이 바로 그런 분들이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결정에서 나온 것들이며, 특히 개인성화의 길을 위하여 
마리아의 전구에 의탁했던 것이다. 이러한 신뢰에 대한 신학적인 근거는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과 끝에 (물론 그의 삶 전체를 관철하지만) 마리아께서 함께 하신 것에 기인한다
(가나의 혼인잔치와 골고타 산 위 십자가 아래서). 묵주기도의 의미는 마리아가 어머니다운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을 돌보는 데 있다. 이것은 아직 순례의 길에 있는 신앙인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된다.
3. 결론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드리는 기도는 단연 묵주기도라고 할 수 있다. 
10월은 묵주기도의 성월이고, 10월 7일은 로사리오 성모님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이 축일은 1572년 교황 비오 5세께서 선포하였는데 1571년 10월 7일, 터어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일명, 레판토해전의 승리). 이것은 묵주기도와 관련이 
있으며 마리아를 로사리오의 여왕으로 부르게 되었다. 교황 비오 5세께서는 
1569년 묵주기도의 기도문과 형식을 표준화하였다. 그리고 묵주기도의 교황으로 부르는 
레오 13세는 1883년 9월에 회칙 ‘최상의 사도적 직무’(Supremi Apostolatus Officio)를 
발표하면서 로사리오 성월에 매일 성당에서 공동으로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하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신자들은 묵주기도 할 때 특별한 지향을 두었고, 마리아께서 
그들을 위해 전구해 주시길 기도했다. 그 대표적인 기도가 9일기도, 즉 54일 기도이다. 
  묵주기도에 대한 개개인의 체험은 대단히 중요하다. 날마다 묵주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희망과 함께 믿음과 사랑 안에서 살 수 있다. 왜냐하면 묵주기도는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기도자는 성모님께서 그를 어떻게 동반하여 주시는지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우리 삶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당신 자신의 삶 안에서 우리보다 앞서 모든 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잉태를 통하여 최고의 기쁨을 체험하였고,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통하여 
가장 큰 슬픔을 겪었으며, 또한 하늘에 올림을 받음으로써 완전한 영광을 차지하였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안에서 겪게 되는 희노애락을 잘 아실뿐 만 아니라 
또한 함께 하여 주시길 원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은 성모님을 전구자로 
모시고 의탁할 수 있어야 한다.
          *****     *****     *****     *****
(구원을 비는 기도)
성모님께서 1917년 파티마에 발현하였을 때 권한 기도로서, 제1, 2차 세계대전 예고 및 
러시아의 회개와 세계평화를 위해서 매 영광송 후에 바칠 것을 권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빛의 신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황 재위 25주년 첫 날인 2002. 10. 16.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를 반포하면서 2002. 10 - 2003. 10 까지 1년을 
묵주기도의 해로 선포하였다. 이때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공생활을 주제로 한 ‘빛의 신비’를 
드릴 것을 권고하였다. 특별히 세계 평화와 가정의 평화를 위한 지향으로 드릴 것을 당부하였다.
❶ 빛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심 - 회개
   요르단 강에서 세례받으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우리 자신의 회개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한다. “주님의 길을 닦고 굽은 길을 바르게 하여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되리라.”(이사 40,3-5)하신 말씀에 따라 요한은 요르단 강 주변을 두루 다니면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하였다(루가 3,3).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가 3,22).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단식하시면서 기도하셨다(루가 4,1-2). 
❷ 빛의 신비 2단: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 - 믿음
   혼인생활을 축복하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가족 간의 신뢰와 사랑을 위하여 기도한다. 
1주일 동안 계속되는 혼인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그런데 유다인들에게는
 ‘포도주가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는 속담이 있다. 포도주가 다 떨어질 즈음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곳에 있었는데, 성모님은 잔치집의 곤경을  보시고 아들을 바라보며 
“포도주가 다 떨어진 모양이다....”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아직은 제가 나설 때가 
아닙니다.” 하신다. 그러나 성모님은 아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신 듯 시중꾼들에게 “내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시오.”하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우시오.”라고 이른다. 
시중꾼들이 시키는 대로 하자 그 물은 어느 새 좋은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첫 기적을 가나에서 행하셨고, 제자들은 그분을 믿게 되었다.
❸ 빛의 신비 3단: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 - 희망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천국의 기쁨을 그린다. 예수님께서는 
행복의 길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 가르치셨다. 
“하느님 나라는 밭에 뿌려진 좋은 씨와 같습니다. 밤과 낮이 지나가는 동안 씨는 싹이 터서 
자랍니다. 땅이 절로 열매를 맺게 합니다.”(마르 4,26-29).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비슷합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이지만 자라면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 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
(마태 13,31-32). “하늘나라는 그물과 비슷합니다.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차면 바닷가로 
끌어올려 놓고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버립니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마태 13,47-49).
❹ 빛의 신비 4단: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하심 - 영광
   빛나는 모습으로 ‘빛’이심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우리들에게 삶의 길을 
비춰주시길 기도한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타볼산으로 
올라 가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그 모습이 거룩하게 변하시어,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다.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하셨다. 세 사도가 황홀경에 빠져 있을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택한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사 42,1). 예수님께서는 죽으셨다가 살아나실 때까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❺ 빛의 신비 5단: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 - 사랑
   사랑의 성체성사를 세우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빵을 주시길 
기도한다. 예수님께서는 만찬 상에서 제자들에게 “내가 죽기 전에 이 만찬을 얼마나 원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하느님 나라에서 해방절을 지낼 때까지 이 만찬이 마지막이다.”(루가 22,14-16)
하고 말씀하셨다. 또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어 주시면서 서로 섬기는 겸손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빵을 들고 축복하신 다음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니라.” 하셨다. 잔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마시라고 주시면서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 26, 27-28)라고 하셨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내가 주는 새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1-35) 하셨다.
           +++  정복례 실비아 수녀  +++

    '☎ 궁금해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0) 2008.06.07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2-267)  (0) 2008.06.06
    가톨릭 상식  (0) 2008.05.22
    연옥에 대한 오해와 이해  (0) 2008.05.22
    삼위일체 (三位一體)  (0) 2008.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