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평화방문요양센터
2007. 3. 8. 12:54


기초 신학
(라)theologia fundamentais (영)fundamental theology
소극적인 호교론을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신학 반성 작업을 수행하는 학문.
기초 신학은 예전에 호교론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넘겨받으며
등장하였다.
이미 초세기부터 교부들은 이단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교회를 방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그러나 호교론이 독자적 학문으로서 자리를 얻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에 이르러서이다.
18세기 말에 호교론이 독자적 학문으로서 자리를 굳힌 데에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슐라이어마허(F.D.E. Schleiemacher)와 가톨릭 신학자
드라이(J.S.Drey)의 공헌이 컸다.
18세기까지의 호교론은 다분히 논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호교론자들은 다른 종교와 종파 내지 이념들과 논쟁하면서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거나, 상대방의 주장 일체를 거부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바로 이 점에 대한 반성이 100여 년 전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정통과 상대되는 이론에 대해 경계하는 것보다 신앙의 기초를 놓는 작업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호교론 대신 기초 신학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기초 신학은 기초 신학이라는 단어가 의미 하듯 신학의 영역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기초란 어떤 이념을 형성하는 기초가 아니라
신학 내부에 들어 있는 기초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것이므로
기초 신학적 연구는 신학 및 신앙의 뿌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개념 및 연구 대상]
신앙은 인간이 구원을 받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고 신학을
연구하는 데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기초 신학은 바로 이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대한 합리적인 정당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더 정확하게는 가톨릭 교회의 계시 진리에 대한
신앙을 이성적으로 정초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기초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하여 합리적인 답변을
추구하는 학문이며,
신앙의 대상인 계시의 본질과 계시 사건 자체를 취급한다.
기초 신학 최초의 질문은 다양하고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는
신학의 분야 중에서 ‘신학의 원리로서 기초를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신학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하는 기본 원리,
즉 신학의 최종 근거는 무엇인가?
개별적인 것들을 포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질문들은 다분히 초월 신학적인 지평 위에서
제기되는 신학적 질문들이다.
기초 신학의 핵심적인 질문은 ‘계시란 무엇인가?
계시는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이해되는가?
계시의 구조와 범주는 어떠하며 어떻게 선사되며 어떻계 전달되는가?'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여 기초 신학은 일반적인 계시 개념이 아니고
신학적 계시 개념을 택한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의지의 영원한 결정들을 계시하셨다”고 천명하였다.
기초 신학에서 논의되는 계시의 본질 및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결국
하느님의 절대성,위격성에 대한 문제로 귀착된다.
아울러 계시가 실제로 발생했는가 하는 문제도 논의한다.
계시의 사실적 발생에 대한 질문이다.같은 때, 한 장소에서 발생한
계시에 대한 증거 및 근거와 적법성이 있는가.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계시 사건을 믿게 할 수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이는 계시의 신빙성에 대한 질문이고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이성적 답변을 요청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신앙이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그런데 이런 신앙은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여 얻어내는 합리적인
답변과 일치할 때에 비로소 맹목적인 신앙이 아닐 수 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앙이란 “인간의 합리적 이해에 어울리는 순종”
(DS 3009)이라 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앙의 순종이 합리적 이해와 일치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자기 계시의 외적 증거를 성령의 내적 도우심과 연관 맺어
놓았으니,외적 증거로는 무엇보다 기적과 예언을 꼽을 수 있다고
천명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하느님의 계시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꼭
기적과 예언을 들지는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자의 입장에서는 신앙을 받아들이기에 앞서서
논리적으로 두 단계의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제1단계는 가신성 판단(judicium credibilitais)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신빙성이 있다는 판단, 즉 하느님의 계시를 참으로
확실하고 믿을 만하다고 판단하는 행위를 말한다.
제2단계는 당신성 판단(judicium credentitatis)이다.
믿는 것이 거룩한 의무라고 판단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 과연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가 아닌가의
논란이 있으나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가신성 판단을 위한 계시의 신빙성에 대한 질문과 당신성 판단을 위한
신앙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기초 신학은 제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러면 계시의 증거들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은 성서와 성전이다. 신약성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을 이루는
하느님 계시의 증명서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기적들도
수없이 행하셨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20.30~31) 성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하느님이 누구이고 어떤 분이며,
인간과 어떤 관계에 있는 분인지 분명하게 기록된 계시의 책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요한 복음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의 행적과 말씀이 빠짐없이 기록된 책은 아니다.
계시된 진리의 다른 많은 부분은 교회가 보존해 오고 있다.
하느님은 결코 직접 말씀하지 않고 현세적 매체들을 통하여 말씀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시의 매체들은 과연 신빙성이 있으며,
이것들을 통하여 우리는 신앙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신빙성 판단과
당신성 판단을 위한 질문이 요청된다.
신빙성 판단 및 당신성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독특한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말씀을 듣는 사람이 통찰력을 지닐 수 있도록 기초 신학은
역사학적,철학적 정리들을 총동원하여 그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발그라브는 기초 신학을 ‘신앙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그리스도교의 사상적 노력’ 이라고 정의한다.
[방법론]
방법론적으로 기초 신학은 우선 게시의 신성에 대한 증명을
제시하는 데 전력한다. 그래서 신앙으로 부픔을 받은 사람이 계시가
과연 신빙성이 있다는 확실한 판단과 계시를 믿을 의무가 있다는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느님 말씀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일은 이성의 힘으로 이룩하는데
여기에서는 경험적, 역사적, 철학적인 방법이 동원된다.
이렇게 기초 신학은 계시의 신빙성에 관한 객관적,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신앙이 가져다 주는 위로나 힘 따위의 주관적 체험을
중심으로 기초 신학을 정립할 수도 없으며 계시의 신성을 증명하는 데
있어서 수학적 자연 과학적 방법을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기초 신학은 17~18세기 이후 다음 세 단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 단계는 ‘종교의 필요성’(demonstratio religiosa)으로서 종교
철학적인 방법으로 인생에 있어 종교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둘째 단계는 ‘그리스도교의 필요성’(demonstratio christiana)으로서
초자연적 계시의 신빙성 문제를 다루었는데,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셋째 단계는 '가톨릭의 필요성’(demonstratio catholica)으로서 예수께서
교회를 세웠고, 로마 가톨릭 교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였다.
이것은 호교론적 관점에서 기초 신학이 취한 방법론이었다.
이러한 기초 신학의 구조는 이른바 독일형과 로마형으로 구분되는데,
독일형은 ‘종교의 필요성’에 치중한 반면 로마형은 ‘그리스도교의
필요성’과 ‘가톨릭의 필요성’을 더 강조하였다.
그리고 로마형의 영향을 받은 독일 지역에서는 기초 신학을 철학과
교의신학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였다.
곧 신앙 정초가 더 이상 방어나 공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들 자신의 반성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후로 호교론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고
기초 신학은 신앙의 근거에 대한 신앙인들 스스로의 성찰이라고
구분하였다. 이렇게 호교론적 과제를 기초 신학이라는 대명제 하에
수용하여 하나의 기초 신학 방법론을 정립할 수 있다.
[과제와 전망]
기초 신학의 과제는 신앙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믿어 오던 것을 분명한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겸해야 한다.
또한 기초 신학은 오해를 해명하고 오류를 교정하고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호교론적 과제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상대의 약점을 꼬집어 공격함으로써 논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을 바탕으로 하여 기초 신학은 시대의
표징에 응답하기 위해서 그때그때의 시대적 관심사를 다루어야 한다.
곧 동시대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을 열어 줄
의무가 있다. 파리 가톨릭 대학 기초 신학 교수였던 앙리 부이야르
(Henri Bouillard)에 따르면 “인간의 사상과 문화와 문명의 위대성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는 어떤 초월적 세계를 향하여 무한히 개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인간이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것을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지 보여 주는 것이 기초 신학의 본질적 역할에 속해 있다.
그리고 기초 신학이 인간 경험에 호소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교적 경험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경험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 경험이 기초 신학의 출발점이라면 그 종점은 계시의 표징
안에서 하느님을 경험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하였다.
현대에 기초 신학은 위기에 처한 학문이다.
오늘날 신앙에 어떤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여겨진다면 그것은 신앙의
비판적 증명 자체도 비판되어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판이란 아무것도 유보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에도 비판의
유보란 있을 수 없다.
기초 신학에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믿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비판적 증명을 제시하는 일이
핵심적인 관심사이다. 결국 기초 신학의 위기는 하느님의 존재 위기와
인간의 비판적 상태 속에 있다.
그러나 신앙이란 인간의 이성적 통찰력으로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신비 또는
신앙의 신비라는 말을 한다.
사실 삼위일체, 강생, 성체 등은 모두 신비이며 합리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기초 신학은 이성으로 만사를 파악하려는 합리주의와는
구분되며 신앙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는 신앙주의와도 구분된다.
그러므로 기초 신학은 신앙에 대해 비판적인 답변을 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희망의 근거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그 근거를
제시해 주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호교적 임무를 간직하면서 무엇보다 신앙 정초에 역점을
두어야 하는 기초 신학은 성서의 명령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희망의
근거를 제시해야 하므로 선교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호교적이면서 선교적인 기초 신학에 있어서의 관건은 결국 계시의 신빙성을
실증하는 것과 계시의 내용을 동시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호교론:라너,칼:초월신학)
+++++ 주수욱 신부님 미니홈피에서 옮김 ++++++